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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안산대
2019.01.10 22:24

신안산대*

https://jdsinside.co.kr/279024 조회 수 31 추천 수 0 댓글 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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네가 있던 자리에는 차가운 기운만이 감돈다.

지금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, 내 성격은 그리 외향적이지 않다. 사람들에게 소외되었던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. 다섯 명. 그 중 나는 유일한 여자였다. 홍일점으로서의 역할이라던가, 그런 것을 잘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. 사교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유머러스한 성격도 아닐뿐더러,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면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.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. 친해질 수 있을까, 이 관계를 균형맞춰 잘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나는 모두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. 단 한 사람, 너만 제외하고.

처음 본 너는 소위 말하는 ‘인싸’였다. 그렇지만 너는 진지하게 말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. 가벼운 농과 장난. 그런 류의 사람이 거북하다. 위트 있게 받아칠 만한 말재간이 없기 때문이다. 안 지 몇 달이 지난 후에도 전화 한 통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. ‘가벼운 사람’인 네게 딱히 끌리지도 않았고, 친해질 계기도 없었다. 구성원. 사실 처음에 내게 너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.

옷장 깊숙이 넣어 뒀던 가을 코트를 꺼내 입고 친구의 생일 파티에 간 날,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집에 오는 길이었다. 그날따라 너무 심심했는데 전화할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생각나지 않았다. 그래! 어색하겠지만 술김이니까! 전화를 걸었다. 받자마자 나는 뜬금없이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. 야! 넌 나랑 왜 연락 안 해! 그때 어이없어하며 웃던 목소리가 지금도 생각난다. 그 날부터, 우리는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하게 되었다.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. 그냥 심심해서, 등교할 때, 공강 시간에, 알바하러 갈 때, 집에 가는 길에, 자기 직전까지 전화를 했다. 우리의 통화는 ‘대화’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별 내용이 없었다. 침묵이 통화의 반이었고, 나머지 반의 반은 아무 말 대잔치였고, 그 나머지의 반의 반 정도가 진짜 대화였다.

어느 날 정신이 들고 보니 나는 자는 시간까지 너와 공유하고 있었다. 매일매일 장난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연발하는 너에게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, 심심할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던졌다. 와. 그 말이 진심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. 왜냐면 넌 내 이상과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. 내 세계와 네 세계는 너무 달랐다. 그걸 알고 있었기에 애초에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던 건데. 그걸 깨달았을 때 나는 이미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.

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평범하지만 평탄하지 않은 길을 걸으며 자잘한 상처를 입었다. 상처에는 경중이 있다. 종이에 손이 베여 스치듯 흘러내리는 피와 칼에 찔려 떨어지는 핏방울의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. 무게라고 말하기엔 뭣하지만 네가 진 현실의 짐이 그렇게 느껴졌다. 마냥 가벼운 줄 알았는데, 그런 게 아니더라. 너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. 혼자 모든 것을 지려고 했다. 동정한 건 아니었다. 다만 그 무게가 너무 슬프고 아파서 같이 들어주고 싶었다. 그것마저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냥 너를 안고 너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, 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. 하지만 겨우 안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내 위로를 거만하다고 느낄까 봐, 어쩌면 너무 서툴러서 너의 상처를 더 깊이 파내는 꼴이 될까봐 입을 열지 못했다.

네가 말했다. 좋아한다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. 그랬다. 친한 친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툭 던질 수 있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어렵지. 그 말을 한 후 네가 던진 좋아해라는 한 마디에 나는 무너졌다. 네가 좋았다. 마음이 넘쳐 눈을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. 언젠가 네가 그랬다. 우리의 거리와, 사회적 위치의 차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. 그깟 물리적인 조건 따위 중요하지 않았지만, 나 역시 너를 감당할 수 없었다. 아니, 정확히는 내 감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. 이미 그 크기가 수용 범위를 넘어섰기에 마음이 아팠다.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한데, 너무 불안하고 너무 외로웠다. 빨리 식을까봐 무섭다고. 근데 그럴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미안하다고. 알아, 나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. 네 기대에 내가 미치지 못한 건지, 밀당을 하지 못한 탓인지, 네 아픔 때문인지. 그래. 알고 있었다. 너와 나는 너무 다르니까.

괜히 매달려서 다른 애들까지 그 분위기에 말리게 하고 싶지는 않다. 네가 나로 인해 힘들어지는 것 역시 바라지 않는다. 때가 되면 알 것이라는 그 말이 생각난다. 지금이 그 때라고 생각한다. 그냥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아서 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. 네가 보고 싶지만 너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, 지레 겁먹은 것일지도 모른다. 이 글을 쓰는 게 옳은지 그른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. 네 이야기인 것을 알면 너는 화를 내겠지. 사귀던 사이도 아닌데 왜 이렇게 구차하냐고 몸서리칠지도 모른다. 무섭고 조심스럽다. 놓기 위해 쓰는 글이지만 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.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다. 겨우 몇 달 연락하고 얼굴 몇 번 봤을 뿐인데. 넌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. 나도 못 하고 있는데 뭐. 너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주변을 깨끗이 정리했다. 깨끗이, 흔적도 없이.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려나. 모르겠다. 후회한다.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.

네가 있던 자리에는 아직 네 온기가 남아 있다.


#190112_19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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